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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입(type)의 역사 3.사진식자, 허브 루발린, 디지털 시대

by B___ 2022. 8. 14.

사진식자

새롭게 개발되거나 개선된 인쇄기의 출현은 수세기에 걸쳐 지속되었으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기에 이르러서야 식자 장비의 혁신적인 진보가 이루어졌다. 속도가 떨어지고 가독성도 낮은 것과 더불어, 금속 타입의 적용에 따른 한계들 중 하나는 글자들 사이에 얇은 금속판을 삽입하여 공간을 수동적으로 만들지 않고서는 타입의 간격을 자동으로 조절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1880년대 오트마르 머건탈러가 발명한 라이노타입과 톨버트 랜스턴이 발명한 모노타입을 포함하여 이후 개발된 자동주식기들은 인쇄 공정을 빠르게 하여 마침내 한 번에 한 자씩 수작업으로 조판하는 번거로움을 개선하였다. 손조판에서 기계조판으로 대체됨으로써 향상된 속도감은 최신 속보의 인쇄 마감 시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신문의 발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식자의 변화는 점진적으로 활판인쇄를 대체한 사진 공정인 오프셋 평판인쇄와 같은 인쇄산업의 발전과 함께 진행되었다.

이 같은 기술은 1950년대 중반 사진식자의 개발로 거대한 도약을 하였다. 머건탈러와 인터타입 등 저명한 몇몇 기업은 타입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감광지에 빛을 쏘여 그 타입페이스들을 네거티브 필름 위에 나타냄으로써 타입을 배치하는 사진 공정을 개발하고 개선하였다. 금속 식자는 질적인 개선은 물론 양적인 개선으로 이루어졌다. 이제 식자는, 초당 5자나 6자가량을 식자했던 과거와 비교하여 500자 이상을 식자할 수 있는 자동화 방식으로 가능하게 되었으며, 식자기계 또한 크기가 작아지면서 공간을 덜 차지하게 되었다. 타입 이미지들은 정교하고 또렷해졌으며 기계에 의한 교정이 가능해졌는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스타일, 무게, 사이즈의 혼합, 자간, 글자 간격과 커닝, 행간, 행 간격, 어간, 낱말 사이, 하이픈 삽입, 정렬, 오버랩 그리고 여러 사진술의 특수효과 등에 다양한 유연성이 생겼다. 식자 공정에서의 많은 제약들이 급격히 사라짐으로써 타이포그래피와 타이포그래픽 디자인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허브 루발린

1960년대와 1970년대 타이포그래피와 타이포그래픽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은 정열적이고, 창의적이며, 거침없던 뉴욕 디자이너 허브 루발린이다. 그의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타입의 사용, 특히 허브 루발린이 디자인과 편집을 하고 ITC사가 출판한 U&lc라는 출판물에서의 타입의 사용은 전 세계의 디자이너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의 디자인은 좁은 자간과 행간, 모든 타이포그래픽 디테일에 대한 예리한 주의력으로 이글어낸 극단적인 자간, 그리고 타입의 전체적인 사용과 과거에는 본 적이 없는 창의적인 새로운 타입페이스로 제작되었다. 게다가 그래픽 요소로서 타이포그래픽 형식을 적용하거나 타이포그래픽의 시각적 흥미를 주면서, 전에는 거의 쓰이지 않았던 묘사적인 방식으로 타입을 사용하였다.

전에는 타입으로 할 수 없었던 일들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그는 이러한 시도를 했다. 허브 루발린이 시작했고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모방했던, 특히 때대로 가독성을 무시한 좁은 간격의 타입을 강조했던 타이포그래픽 경향은 금속식자의 제한에 대한 반응이었다. 오늘날, 이 스타일에 대한 비판자들이나 추종자들이 있지만, 타입과 타이포그래픽 디자인의 진화에 끼친 막대한 중요성과 영향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이 스타일이 어떻게 그리고 왜 생겨났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디지털 시대로

20세기에도 식자 기술의 진보는 굉장한 속도로 진행되었다. 사진식자는 디지털 식자법이 자리를 잡은 1980년대부터 20년 조금 넘게 사용된 것이었다. 이것은 매우 고가였으며 새로운 기술이었기 때문에, 오직 타입 공방의 전문 타이포그래퍼만이 이 자동화 된 전자기술을 받아들였다. 이 새로운 디지털 식자로 인해 타입의 배치, 사진과 그림 그리고 레이아웃을 한 작업공간에서 처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디지털 색 분해와 수정, 터잡기와 조판도 짧은 시간에 가능해졌다. 이 시기에도 여전히 식자는 타이포그래피의 기교와 기술을 수년씩 배운 전문가들의 손을 통해서야 가능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 후 몇 년 만에 모두 바뀌게 되었다.

1985년 세계는 스티브 잡스의 지휘 아래 애플사가 최초로 개발한 '데스크톱 컴퓨터'인 매킨토시 컴퓨터의 도입으로 변혁이 일어났다. IBM을 중심으로 다른 업체들은 퍼스널 컴퓨터나 PC로 알려진 그들 자체 브랜드의 버전을 향상시키고 있었다. 이들 PC는 Mac과는 다른 운용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능을 중요시하는 점은 동일했다. 데스크톱 컴퓨터에서 타이포그래피 구현을 가능하게 해준 전자출판 DTP로 인해, 사실상 누구나 컴퓨터 모니터에서 타입으르 조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새롭고 흥미로운 기술은 매 순간 개선되고 있었다. 동시에 Adobe Illustrator와 Aldus Freehand와 같이 일러스트레이션에 기반을 둔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Adobe PageMaker나 QuarkXpress 같은 페이지 레이아웃용 프로그램들도 개발되었다. 데스크톱 컴퓨터의 메모리와 속도가 증가함에 따라, 점차 타입의 배치와 섬세한 조절 기능을 포함하는 프로그램의 특성과 성능도 향상되었다. 동시에 ITC사, 어도비, 라이노타입, 컴퓨그래픽스, 버트홀드와 같은 기업들과 타입업체들은 새롭고 다양한 타입디자인들을 출시할 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타입목록을 디지털 버전으로 개발하는 것에 집중했다. 폰트뷰로, 에미그레, 티-22 그리고 폰트숍과 같이 작지만 전문화된 업체들은 매우 혁신적인 최첨단 타입 디자인을 소개하였다. 레트라셋 폰트스튜디오, 매크로미디어 폰토그래퍼 그리고 이카루스-엠과 같은 타입 디자인 프로그램이 출시됨으로써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타입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발전은 타입 디자인의 민주화를 이끌었고, 오늘날 상업적으로 이용 가능한 수천 가지 타입의 등장에 기여했다. 타입들은 매우 완성도 높은 것에서부터 애매한 형태 때문에 사용자가 암호를 해독해야 하는 지나치게 초라한 수준까지 다양했다.

그래픽 디자인 제작 방법 역시 극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촬영 직전에 교정쇄, 왁스, 본드를 사용하여 완성하는 수작업물인 대지작업과 조판은 저렴하고 빠르고, 더 탄력적인 디지털 작업으로 대체되었다. 타입은 더 이상 고가의 외주 타입업체에 맡길 피룡가 없어졌으며 그래픽 디자이너들과 프로덕션 작가들, 더 나아가서는 사무직원들도 타입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우수한 타이포그래피 조판 작업은 과거에는 습득하는 데 수년을 투자하고 평생을 그 일에 바치는 고도로 숙련된 전문가를 요구하는 예술이자 공예였다. 그러나 약간의 예외는 있지만 오늘날 몇몇 명문 디자인 학교가 이 중요한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디자이너와 타이포그래피 업계종사자 대부분은 타입에 관한 심도 깊은 교육을 받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의 안타까운 결과는 당연히 미숙한 타이포그래피의 확산이라 할 수 있다.

이 문제의 원인 중 또 다른 요소는 페이지 레이아웃 프로그램의 초기 버전에는 타입을 미세하게 조정할 수 있는 성능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고맙게도 요즘 업그레이드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들은 훨씬 더 정교하고 강력하며 뛰어난 타이포그래피의 제작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전히 숙련되고 풍부한 지식을 가진 디자이너만이 훌륭한 타이포그래피를 완성할 수 있다. 컴퓨터는 도구일 뿐이어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디자이너와 프로덕션 작가들은 완성도 높은 타이포그래피의 제작에 필요한 요소들에 숙달되어 있지도 않고, 그것응ㄹ 얻을 수 있는 페이지 레이아웃 프로그램의 특징들을 파악하지도 못했으며 또 잘 알지도 못한다. 그러나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훈련을 한다면 타입을 제작하는 능력과 계기뿐만 아니라 전문가 수준의 타입에 대한 안목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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